[세계의 창] 실업가 시부사와 에이이치를 내세우는 일본

입력 2021-02-22 17:03   수정 2021-02-23 08:46

일본 NHK에서 방영하는 대하드라마는 주로 역사적으로 유명하거나 주목할 만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다루며, 공신력도 높다. 지난 14일 시작된

‘청천을 찔러라(靑天を衝け)’는 ‘일본 자본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시부사와 에이이치가 주인공인 60회에 걸친 대작이다. 2024년 상반기엔 1만엔권 지폐의 초상 인물도 현재의 후쿠자와 유키치(계몽사상가로 게이오대 설립자)에서 시부사와로 바뀐다. 왜 이처럼 시부사와를 내세우는 것일까?

일본이 시부사와를 부각시키는 이유는 그가 메이지(明治)시대 왕성한 기업가 정신으로 500여 개 기업을 일으키고 600여 개 사회사업에 관여하며 근대화에 크게 공헌했기 때문이다. 시부사와는 1840년에 태어나 1931년에 사망했다. 즉, 시기적으로 그는 에도막부(江戶幕府) 무사정권 말기와 메이지 신정부 확립기라는 격동기에 부국(富國)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다. 일본은 메이지유신(1868년) 이후의 근대화와 제1차 세계대전에서의 물자 공급으로 부국강병을 이뤘다.

시부사와의 사업철학은 사익(私益) 추구의 서양 자본주의 사고방식과는 사뭇 달랐다. 그의 사상은 《논어와 주판(論語と算盤)》이라는 저서 제목으로 상징된다. 여기서 논어는 ‘도덕’을, 주판은 ‘경제’를 가리킨다. 일견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논어와 주판, 즉 철학과 비즈니스를 자동차의 두 바퀴와 같은 관계로 비유할 수 있겠다. 시부사와는 올바른 도리에 기초한 부(富)가 아니면 오래가지 못하고, 경제적 풍족이 없으면 도덕을 실행할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시부사와의 도덕과 경제의 합일(合一)은 ‘사업 실현’과 ‘인재 육성’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그는 공익 추구의 사명 달성에 적합한 인재와 자본을 모아 사업을 실현해 갔다(이를 ‘합본(合本)주의’라 함). 당시의 도쿄를 군사도시(軍都)가 아니라 민(民)과 관(官)이 협력해 만들어 가는 상업도시(商都)로의 재건을 내세웠다(그의 생애 후반은 군부가 실권을 장악해 가는 시기와 겹친다). 나아가 논어의 가르침에 따른 국제적인 시야를 갖는 상업 교육, 여성 교육, 한학(漢學) 교육으로 다방면의 인재를 육성했다. 관동대지진(1923년)으로부터의 위축을 극복할 때도 물질의 부흥만이 아닌 정신의 부흥을 이뤄 안심하며 지낼 수 있는 덕(德) 있는 사회 구현을 추진했다.

시부사와가 최근 회자되는 까닭을 ‘결핍’과 ‘의지처’라는 말로 가늠할 수 있겠다. 일본은 1990년대 초 거품경제 붕괴 이후 지금까지 ‘성장상실기 30년’을 거쳐오면서 정치·경제·언론의 리더십 결핍에 직면해 있다. 그런 결핍 상황에서 도덕률의 기업가 정신을 강조한 시부사와라는 인물을 의지처로 부상시켜 자신감을 심어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논어의 종주국 중국에서도 시부사와를 유교적 기업가로서 성공한 보기 드문 예로 보고 있다.

시부사와는 도덕과 경제의 합일에 더해 신뢰 그리고 ‘충서(忠恕)’를 중시했다. 《시부사와 에이이치: 일본의 사회기반을 창출한 민간경제의 거인》의 저자 기무라 마사토 교수는 충서를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과 상대방의 입장에 선 언동’이라고 해석한다. 시부사와를 내세우는 데는 산관학(産官學) 및 언론이 일본에 맞는 모델을 찾으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일본에서의 시부사와 부각을 주시하며 우리는 우리에게 어떤 모델이 적합한지를 모색해 사회적 합의 도출을 어떻게 이뤄갈지 고민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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